[리뷰] <해적> 역대급 대진표 속에 '웃음' 하나로 500만!

2014-08-25     김은주 기자

※ 본 기사는 주관적인 리뷰이며 일부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올 여름 비슷한 시기에 <군도>, <명량>, <해적>, <해무> 등 대작들의 개봉이 차례로 예정 됐을 때 그 중 기대치가 가장 낮게 평가 됐던 영화를 뽑으라면 아마도 ‘해적’일 것이다.

‘하정우’의 군도, ‘최민식’의 명량, ‘김윤석’의 해무와 비교하면 ‘손예진과 김남길’의 해적은 상대적으로 배우가 주는 임팩트가 약하다는 점이 그 첫 번째 이유. 개봉 전 미리 공개 된 스틸컷과 짧은 예고편에서 조차, 숨길 수 없는 B급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해적은 현재 누적관객수 500만을 가뿐히 돌파했으며, 개봉 후 25일간 단 한 하루도 왕좌에서 내려온 적 없는 명량을 제치고 최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미 1600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 영화계의 흥행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넘사벽’ 명량의 압승은 논외로 접어 두자.

500만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채 누적관객수 477만 명을 동원하는데 그친 군도와 최근 100만명을 갓 돌파한 해무와 비교해 예상 밖의 가장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 중인 영화 해적의 기세가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이 예상치 못한 반전드라마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걸까.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

고래가 조선의 국새를 삼켰다. 명나라에서 국새와 국호를 받아오던 사신들의 배가 뒤집히면서 국새가 고래의 뱃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 믿기 힘든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인해 사신과 개국공신들의 발등에 당장 불이 떨어졌다.

반드시 보름 안에 국새를 찾아오라는 임금의 지엄한 어명과 함께, 저마다 각자의 목적과 나름의 사정을 안고 고래와 국새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해적들, 산적들, 관군들이 모두 바다 한 가운데로 모여들어 국새 쟁탈전을 벌인다.

다소 엉뚱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한 영화 ‘해적’의 설정은 실제로 조선이 건국되고 초기 10년 동안 국새가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브를 따서 제작됐다지만 99.9% 픽션 영화 일 뿐이다. 이런 황당한 설정만큼이나 이야기의 흐름과 구조도 어렵지 않다.

오히려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영화처럼 단순하고 유치하다. 그래서 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영화다. 스토리의 설득력과 개연성 부재로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철저하게 오락영화로써의 임무에 올인 하는 뚝심은 높이 살만하다.

빅4 영화 중 유일한 12세 관람가 영화답게 가족들과 함께 보기 민망한 진한 러브씬, 피가 낭자하는 잔인한 싸움 장면, 쓸데없이 무분별하게 남발하는 욕설이 없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또, 비슷한 느낌의 퓨전 사극 영화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 꽃의 비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보다는 확실히 큰 스케일로 볼거리의 재미도 높였다.

▶기대치가 낮아서 오히려 득이 된 아이러니

영화 해적을 재미있게 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그 앞에 수식어처럼 붙는 말이 있다.

바로 ‘생각 보다’, ‘기대 보다’ 재미있었다는 표현이다. 나름 17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입 된 조선판 해양 블록버스터 대작 ‘해적’에 대해서 사람들은 정말 냉정할 정도로 기대감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영화 정말 생각보다 재밌다. 기대가 없으니 오히려 만족도는 높았다.

요즘 영화는 무엇보다 입소문이 중요하다. 똑같은 5점짜리 영화라도 9점짜리 영화를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 보다, 3점짜리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5점의 만족도를 주었을 때 더 긍정적인 평가를 얻는 건 당연하다. 해적이 바로 그 후자의 경우다.

▶관객들을 향해 끊임없이 던지는 유머들

해적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개그로 무장했다. 주인공 장사정(김남길 분)과 원한이 깊은 관군 모흥갑(김태우 분)만이 시종일관 진지함과 서늘함을 유지한다.

실존 인물인 이성계는 기존의 사극에서와는 전혀 다른 가벼운 이미지로 웃음을 준다. 심지어 잔혹한 악당 해적 소마(이경영 분) 조차 예상치 못한 웃음 포인트로 관객들을 크게 웃게 만들었다.

영화 해적은 캐릭터는 많지만 정작 내용은 얼마 없다. 빈약하고 조악한 스토리의 빈 공간을 러닝타임 130분 내내 웃음으로 채운다. 유머의, 유머에 의한, 유머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은 ‘해적’표 유머 코드가 통하냐 통하지 않느냐로 단정 지을 수 있다.

해적에서 인물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유머가 자신의 웃음 포인트와 부합한다면 시원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고, 코드가 맞지 않다면 잔인할 정도로 재미없는 영화로 전락할 것이다. 웃기려고 작정하고 만든 영화인데, 웃기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낭패가 또 없다.

▶감초 그 이상, 유해진

주인공 ‘장사정’은 선덕여왕 ‘비담’의 연장선으로 매력은 다운그레이드 된 느낌이었고, 해적단을 이끄는 대단주 ‘여월’ ‘손예진의 여장부 액션 연기와 목소리 톤은 간간히 어색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김남길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는 분명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고, 미모는 물론 카리스마까지 갖춘 해적 두목 ‘여월’ 역할을 손예진 보다 더 잘 소화해 낼 다른 여배우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캐스팅은 분명 합격선이다. 또한, KBS 드라마 <상어> 이후 1년 만에 또 다시 재회 한 김남길과 손예진의 물 오른 연기 합도 충분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그러나 해적에서 두 남녀 주인공 보다 더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 따로 있다. 바로, ‘철봉’역의 유해진이다. 지독한 뱃멀미와 생선이 비리고 입맛에 맞지 않아 해적에서 산적으로 이직하게 된 철봉은 영화 내내 산적 서열 꼴찌와 서열 2위를 왔다 갔다 하며 극중에서 가장 많은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고래가 얼마나 큰지,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철봉을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는 어리석은 산적들의 모습에 가슴을 치며 답답해 하고 억울해하는 철봉의 모습은 어쩐지 짠하고 가여운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웃음 핵폭탄을 선사한다.

해적의 가장 중대한 가치가 유머라면, 그 유머의 중심엔 철봉이 있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능청스러운 코미디와 맛깔나는 애드리브를 선보이는 유해진의 연기에 정신 없이 웃다 영화가 끝나는 기분마저 들 정도다.

유해진 외에 해적의 감초 4인방으로 불리는 나머지 박철민, 신정근, 조달환 모두 충분히 제 몫을 톡톡히 해냈지만, 그 중 단연 돋보인 유해진은 역시 감초 중에서도 최고 감초였다. 감히 유해진을 빼고 해적을 논할 수 없다.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더이상 남길 게 없는 영화

개인적으로 영화는 분명히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 이 영화 참 애매하다. 누군가에 꼭 보라고 함부로 추천 할 수도, 절대 보지 말라고 만류 할 수도 없다.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안 봐도 된다고 말해주는 게 정답이다.

그래도 굳이 조언을 하자면 영화를 보는데 있어 생각 없이 한바탕 웃고 머리를 식히는 것에 가치를 둔다면 추천. 설마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이 영화를 통해 뭔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얻기를 바란다면 비추다. 한바탕 웃고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나름 재미있게 봤는데도 남는 게 없으니 이렇게 길게 리뷰를 쓰는 것도 참 곤혹이다.

잘 짜여진 탄탄한 스토리도, 눈이 호강할 정도의 빼어난 영상미도, 가슴 깊이 감동 받을 배우의 눈물 나는 열연도, 머리를 굴려 유추해야 할 감독의 숨겨진 의도도, 예상치 못한 결말이 던져주는 강렬한 메세지도 없다. 영원히 잊지 못할 명장면ㆍ명대사 역시 없다. 오로지 원초적 재미와 웃음만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해적은 흥행 순항 중이다. 꼭 뭔가 남아야 좋은 영화가 아니라는 방증일 수 있다. 머리 아프게 따지지 말고, 1차원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개그에 아무 생각 없이 한바탕 웃으며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면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은 셈이다.

생각 없이 보고, 마음껏 즐기고, 쿨하게 잊으면 되는 영화.

2014년 8월 6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