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쓰릴미> 충격과 반전, 스테디셀러 뮤지컬의 매력

2014-09-02     김예솔 기자

※ 본 기사는 주관적인 리뷰이며 일부 뮤지컬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컨슈머치 = 김예솔 기자] '쓰릴미'는 2007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뮤지컬계의 스테디셀러라 불리며 꾸준한 인기몰이 중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현재 뮤지컬 시장 규모는 3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성장해 온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은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앤드에서 흥행했던 대형 라이선스 작품들이 한 몫을 해 왔다.

오늘 소개할 ‘쓰릴미’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구성으로 미국 뉴욕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뮤지컬은 대형 뮤지컬, 딱 그것이다. 복층 구조로 된 거대한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곳곳에 배치된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전율을 일으키는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웅장한 노랫소리, 주인공 이외에는 누가 누군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출연진들이 그 모습이다.

대형 뮤지컬들 속에서 '쓰릴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뮤지컬이라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서로의 숨소리를 공유할 정도로 협소한 소극장에 작은 무대, 피아노 한 대가 보이는 것에 전부다. 심지어 출연진은 '나'와 '그' 딱 두 사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릴미'가 매년 꾸준하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극적 소재를 뛰어넘는 치밀한 심리묘사

뮤지컬 '쓰릴미'는 1924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나'(정동화 분)와 '그'(에녹 분)의 서로 다른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극은 수감자 '나'의 일곱 번째 가석방 심의로 시작된다. '나'를 심문하는 목소리들은 34년 전 '나'와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묻고 '나'는 담담하게 지난날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서 명석한 그들이 12세 소년을 상대로 벌인 범죄는 납치, 살해, 시신유기 등 끔찍한 것들은 다 들어있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는 '나'를 함께 범죄 저지르기에는 최적의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각자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피로 계약을 맺는다. '그'는 '나'에게 함께 범죄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고 '나'는 그 대가로 '그'의 관심과 사랑을 원했다.

여기서 '나'와 '그'는 모두 남자다. 납치, 살해, 시신유기도 모자라 동성애적 요소까지 온통 자극적이고 사회 관념을 뒤흔드는 소재뿐이다. 하지만 '쓰릴미'는 자극적인 소재를 뛰어넘는 치밀한 심리묘사로 극단적이고 복잡한 인간내면의 모습을 긴장감 있게 풀어내고 있다.

두 인물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목적의식은 분명하다. 어찌 보면 서로에게 win-win인 계약으로 보이지만 이 안에 숨겨진 반전은 극의 치밀함과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두 명의 배우가 연기력으로 채운 무대

단 두 명의 배우가 100분 동안 관객을 휘어잡을 수 있었던 것은 연기력 덕분이다. 공연을 이끌어가기에 다소 벅차 보이는 몇 안되는 소품들과 화려한 멜로디도 아닌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맞춰 대사를 전달해야하는 어려움에도 배우들의 연기력은 빛났다.

34년 전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긴 세월만큼이나 확실히 달랐다. 영화처럼 분장을 할 수도 편집을 할 수도 없지만 목소리와 말투만으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었다.

과거 20살의 '나'는 가벼운 목소리의 톤으로 '그'에게 늘 애걸복걸하는 찌질하고도 소심한 인물이었지만 현재 50대의 '나'는 묵직한 목소리로 시종일관 담담하게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극의 상황이 바뀐 것을 감안해도 '나'는 긴 세월의 차이를 거부감 없이 연기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50대 연기는 볼 수 없었다. '그'는 오직 20살의 모습만 보여줬는데 '나'와는 다르게 저음의 목소리로 냉소적인 말을 하며 종종 욕을 하기도 했다. 이런 배역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소위 말해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는데 무난히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극 중에서 관객에게 찌릿한 전율을 주는 폭발적인 연기는 없었다. 하지만 관람내내 이물감이 느껴지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줬다. 관객에게 내용을 오롯이 몰입시킬 수 있는 연기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다소 부족한 케미

‘케미’는 드라마나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실제로도 잘 어울릴 때 사용하는 신조어로, 화학 반응을 의미하는 'chemistry'의 줄임말이다. 일반적으로 남녀 주인공의 외모에 대해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 극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연기력에 대한 ‘케미’다.

두 배우가 펼친 각자의 연기는 탁월했지만 배역의 성격을 고려해도 두 배우의 케미는 다소 부족했다.

'나'는 과장된 몸짓과 과잉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다 드러냈다면 '그'는 시종일관 굳어있는 표정과 절제된 연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나’와 ‘그’가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좋은 연기가 따로 펼쳐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뮤지컬의 경우 한 배역에 여러 사람을 캐스팅하기 때문에 정해진 상대역이 있다기보다는 상대역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렇게 소수 인원만이 출연하는 뮤지컬에서는 배역 간의 ‘케미’도 관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단순한 볼거리에 질렸을 때

'쓰릴미'는 가볍게 즐기고 훌훌 털어버리기에는 너무 무겁다. 100분의 러닝타임이 끝나면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진다. 단순히 정리하자면 '결국 '나'와 '그' 모두 나쁜 놈들이고 서로의 목적을 위해 서로를 이용했다' 정도로 정리 할 수 있을 듯하다.

줄거리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그들 내면의 심리와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단정 지을 수 없다. 같은 뮤지컬을 봤지만 사람 개인의 해석의 방식이 다르니 한바탕 토론이 벌어질 법도 하다.

'나'와 '그'를 보고 느낀 생각, 인물의 대사와 행동에 대한 해석, 잔인한 범죄행위의 분노 등 저마다 다른 평들이 오고 간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매력이 ‘쓰릴미’의 재관람류을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소 어렵고 복잡하지만 단순한 볼거리에 질린 사람들에게는 볼만한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10월 26일까지 공연. 만 15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