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기피제 유해성 놓고 소비자원-식약처 또 혼선
가짜백수오 이어 상반된 주장…소비자 갈팡질팡, 황교안 총리도 질타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모기기피제’ 유해성과 관련해 한국소비자원과 식품의약안전처가 상반되는 주장을 펼쳐 소비자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모기기피제는 모기를 직접적으로 죽이는 효과는 없지만 모기가 싫어하는 물질을 피부나 옷 등에 뿌리거나 발라 모기가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는 제품이다. 국내 시장 규모는 연간 약 400억 원 수준이며 매년 2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야외 레저 활동, 캠핑 등을 즐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여름철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모기기피제 시장 역시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은 일부 제품에 발암가능물질이 들어있을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즉각 반박하는 발표를 내 ‘가짜 백수오 사건’ 이후로도 두 정부기관의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있는 모양새다.
▶소비자원, 유효성분 함량표시 의무화 및 사용제한 등 제도개선 ‘촉구’
지난 19일 소비자원은 시중에 판매되는 모기기피제의 허가현황 및 유효성분 안전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제품에 사용된 유효성분에 따라 안전성 및 효과지속 시간 등이 상이해 구매 시 소비자들의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주의를 권고했다.
현재 국내에는 218개 제품이 허가돼 있으며 대부분 디에칠톨루아미드(DEET, 106개 제품), 정향유(57개 제품), 이카리딘(27개 제품), 시트로넬라오일(10개 제품) 등을 유효성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중 DEET는 신경계통 부작용 등 안전성 논란이 지속돼 대부분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사용 함량·빈도·연령 등을 제한하고 있는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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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ET(디에칠톨루아미드) 관련 국내·외 규제(출처=한국소비자원) |
DEET 외에도 모기기피 유효성분들은 국가별로 규제가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비자원은 천연성분인 시트로넬라오일은 한국과 미국은 허용하고 있지만, 유럽연합(EU)·캐나다 등은 오일에 함유된 메틸유게놀(methyl-eugenol) 성분의 발암가능성 문제로 사용을 금지하거나 검토 중인 성분이라고 밝혔다.
또 정향유의 경우 메틸유게놀의 전구체인 유게놀(eugenol)이 약 70~80% 이상 포함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만 모기기피 유효성분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등에서는 유효성분 함량을 의무적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국가별로 DEET 이외 성분도 영·유아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원 발표에 식약처 발끈? “국내 제품 모두 안전하다” 반박
모기기피제 제품 허가를 담당하고 있는 식약처는 즉각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같은 날 식약처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기기피제는 품목마다 심사를 거쳐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돼 있는 제품이라며 소비자원과 정반대의 주장을 내놨다.
지적이 있었던 정향유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의약품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성분으로 대한민국약전(KP)뿐만 아니라 일본·미국·유럽약전에 등재돼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식약처 측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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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기기피제 유효성분의 국내·외 허가현황(출처=한국소비자원) |
정향유는 미국식품의약품청(FDA)에서 일반적으로 안전한 성분(GRAS: Generally Recognized As Safe)으로 분류해 품목 허가 시 자료 제출을 면제하고 있으며, 시트로넬라오일도 유럽약전(EP)에 수재돼 있어 의약품 등에 사용되는 성분으로 정해진 용법·용량 대로 사용하면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즉 정향유, 시트로넬라오일 등이 해외에서 안전성 문제로 금지됐다는 소비자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이들 성분의 사용은 가능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사용경험, 경제성 등의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 것 일뿐이라며, 안전성의 문제로 금지된 것은 아니라는 것.
식약처 관계자는 “소비자가 안심하고 모기기피제 등의 의약외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최신 기술이 반영된 연구와 각국의 규제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짜 백수오 사건 전철 그대로?…소비자 “누구 말 믿어야 하나”
국내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두 정부기관 사이에 혼선이 빚어지자 국무총리가 따끔하게 충고하고 나섰다.
지난달 27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국가기관 발표는 소비 등 일상생활에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는 만큼 충분히 사전협의를 거치는 등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정책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고 질타했다.
총리까지 나서자 한국소비자원은 지난달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유럽연합이 시트로넬라오일 사용을 금지 것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인정했으며 ‘발표와 달리 미국에서 정향유가 판매되고 있다’고 정정했다.
문제는 소비자원과 식약처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대립각을 세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기관은 올 초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엽우피소(가짜 백수오)’ 유해성에 대해서도 상반된 의견을 펼쳐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식약처와 소비자원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
평소 모기기피제를 자주 애용하고 있다는 캠핑매니아 김 씨(37.남)는 “도대체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면서 “일단은 찝찝한 마음이 앞서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데 하루 빨리 정확한 발표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