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세습의 나라 대한민국…'더 나은 세상' 물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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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치 = 이용석 기자]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이달 초 세계 억만장자 명단을 공개했다.
1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차지했고, 3위에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이, 6위에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이름을 올렸다.
이 순위에 우리나라 재계 인사들도 포진됐는데 가장 높은 자리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112위)이 올랐으며 이재용 부회장이 201위,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351위에 올랐다. SK그룹 최태원 회장,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부회장, CJ그룹 이재현 회장 등이 뒤를 이었다.
순위에 오른 부호들은 크게 자수성가형과 상속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특기할 만한 점은 우리나라 부호 중에는 상속형이 많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 중국, 일본의 경우 자수성가형 부호가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재계 소식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데 최근 두산그룹, GS그룹, 코오롱 등은 4세 경영을 시작할 것이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우리가 잘 아는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부회장도 대표적인 3세 승계자들로 아버지를 이어 그룹을 이끌어 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문제될 일이 아니다. 정해진 법 안에서 정당한 세금만 납부한다면 그들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
다만, 수저론으로 대표되며 ‘헬조선’으로 불리는 이 시대가 점점 더 경직돼 가는 분위기여서 걱정이다.
경영하는데 있어서 대물림하며 전수해야 할 비기라도 있는 것인지 증조할아버지가 세운 기업이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쳐 그의 아들까지 전해진다. 주주들에 의해 경영자가 결정돼야 하는 주식회사의 경우에도 결과는 같다.
일반 사원이 입사해서 임원 자리에 앉으려면 최소 20년은 넘게 걸리는데 어떤 이는 입사 후 일반 사원들이 대리로 승진하는 몇 년 동안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상무, 전무 자리에 오른다.
수저론을 읊조리는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그저 금수저 이야기,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수저론은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부분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문제는 노동자, 종교인들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에 '고용세습' 내용을 담은 조항을 포함시켜 문제가 됐고, 대형 교회에서 담임목사 직을 대물림 하는 '세습목회' 문제는 한국 교회의 오랜 병폐로 지적돼 왔다.
베블런효과로 유명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흙수저들이 가는 길을 설명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생존 수단에 해당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을 하층계급으로부터 박탈함으로써 그들의 소비를 줄이며 그 결과 이들의 에너지를 소진시켜 학습은 물론 새로운 사유 습성의 채택에 필요한 노력을 할 수 없는 지점으로 이들을 몰아감으로써 결국 보수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한다”
에너지가 소진된 이들이 수저 타령만 하며 나눠진 계급을 이미 보수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분명한 것은 이런 상황이라면 더이상 역동적인 경제, 사회는 기대하기 힘들다.
세계 부호 순위 6위에 오른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은 그들이 가진 페이스북 지분의 99%(450억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이들은 갓 태어난 딸에게 쓴 편지에서 "모든 부모처럼 우리는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네가 자라기를 바란단다"며 기부의 이유를 대신 설명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도 약 8억 달러의 전 재산을 자신이 죽기 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쿡은 지난해 연설에서도 "아끼는 조카가 있다"며 "내가 죽었을 때 세상이 내가 태어났을 때 세상보다 좋지 않다면 그 아이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라며 환원의 취지를 밝혔다.
세계 경제가 더욱 치열해지는 와중에도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리더들이 부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 리더들은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며 적극적인 기부에 나서는 등 사회 공헌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가진 자’들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후손에게 단순히 ‘풍요로움’을 물려줄 것인지 ‘풍요로운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