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박지현 기자]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은행, 영화예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한 손에서 실시간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반면 소비자들은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통신요금 청구서에 알 수 없는 요금이 추가되는 것이다. 이는 ‘크래밍(Cramming)’이라는 수법으로, 제 3자가 고객 허락없이 모바일 서비스에 대한 요금을 청구서에 부과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용자 동의없는 월 자동결제, 무료이벤트를 가장한 유료결제 등 소비자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는 크래밍 문제에 대해 최근 미국 통신당국은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강경 조치를 취하고 나섰으며 캐나다, 영국, 호주 등도 관련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당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 미국, 부당청구 책임은 이동통신사에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통계에 따르면 매년 20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래밍을 당하지만 그 중 단 5%만이 피해 사실을 알아챈다고 한다.
청구 내역을 교묘하게 숨겼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부당요금이 부과된 것 조차도 모르고 지나쳤으며 이 때문에 미국 이동통신사는 크래밍으로 인한 피해를 제대로 환불해주지 않았다.
![]() | ||
▲ T-모바일은 고지서에 '이용요금(Usage Charges)'이라는 명목 하에 소비자에게 부가서비스를 몰래 청구해 왔다(출처=FTC) |
미국 이동통신업체 T-모바일은 소비자 동의없이 연예인 가십거리나 소소한 팁을 제공하는 서비스 등을 매달 9.99달러(약 1만 원)에 청구했으며, 매 결제마다 35~40%의 수수료를 챙겼다. 또 부당요금에 관한 책임을 콘텐츠 제공자(CP)에 전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7월 휴대폰 부당요금 청구에 대해 T-모바일(T-Mobile)을 제소했고 지난해 12월 크래밍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게 최소 9000만 달러(약 999억원)를 환불하도록 결론이 났다.
이는 고객 동의없이 이뤄진 부가서비스에 대한 책임을 이동통신사가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통신당국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 외에도 지난해 10월 미국 이동통신사 AT&T에 1억500만 달러(약 1166억) 과징금이 부과됐으며, 미국 금융소비자보호국(CFPB)도 지난해 12월 스프린트에 부당과금 관련 소송을 냈다.
미국 외에도 캐나다 경제정책국은 지난 2012년 캐나다 주요 3개 통신사에 프리미엄 SMS 요금과 관련해 재판을 청구했으며, 영국도 최근 면밀한 조사를 실시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이동통신사에 부당요금에 대한 책임을 묻는 추세다.
▶ 호주, 제도적 보완과 소비자교육으로 부당요금 피해 줄여
호주는 부당요금 피해와 관련해 먼저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중 사전동의(double opt-in)’제도 시행으로 서비스 동의 시 서비스 내용과 요금 관련 세부 정보가 제공되며, 소비자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서비스도 시작될 수 없게 됐다. 소비자가 모바일 프리미엄 서비스 차단을 신청할 수 있는 호 제한 서비스(call barring)도 추가됐다.
이와 함께 소비자 피해가 모바일 프리미엄 서비스에 대한 이해 부족에도 원인이 있다고 판단해 특별강연과 언론 매체 등을 통해 소비자 교육을 제공했다.
호주 경쟁 소비자위원회(ACCC)는 2009년부터 부당요금 관련 정책을 차례로 밟아가면서 소비자 불만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 | ||
▲ 2009년 5월 이후로 크래밍 피해 신고가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다. (자료=ACCC) |
▶ 한국, 꾸준한 제도 개선으로 이용자 보호
우리나라에서는 크래밍이란 말 보다 ‘소액결제’, ‘통신과금서비스’ 등으로 불리며 유사한 소비자 피해를 양산해 왔다. 소비자는 소액결제 내용을 확인하기 힘들고 확인했더라도 제대로 환불을 받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이에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6월부터 ‘통신과금서비스 이용자 보호 강화 방안’을 실시했다.
이 방안의 실시로 휴대폰 월 자동결제는 이용자가 ‘명시적으로’ 동의를 한 경우에만 가능하고, 매월 자동 결제 내역을 이용자에게 의무적으로 알려 소비자가 즉시 인지할 수 있게 했다. 또 소비자가 이동통신사 고객센터나 홈페이지를 통해 월 자동결제 기능을 사전에 차단 신청할 수 있다.
![]() | ||
▲ 소액결제 소비자 피해 예방법(출처=한국소비자원) |
또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내 이동통신사 역시 통신과금서비스 소비자 피해 관련 책임을 회피하는 양상을 보였다.
미래부 관계자는 “해당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이동통신사는 수납대행만 한다는 이유로 결제대행사나 콘텐츠 제공자 연락처만 제공하고 민원을 종결하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미래부는 지난해 12월 ‘통신과금서비스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개선방안에 따라 앞으로 이동통신사에 민원이 제기되면 이동통신사는 민원처리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도록 했다. 시행 후부터 이동통신사는 결제대행사 및 콘텐츠 제공자에 직접 연락해 환불 절차를 진행한 후 처리 결과를 이용자에게 통지해야 한다.
미국 등 여러국가가 이동통신사에 큰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과 견줘보면 강력한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부의 통신과금서비스 피해 관련 개선 방안은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화결제산업협회에 따르면 제도 실시 후 휴대폰 소액결제 민원이 지난 2013년 월 평균 1만5821건에서 2014년 2140건으로 약 87% 감소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제도 개선을 통해 통신과금서비스 이용자 보호 수준을 한층 높였다"며 "앞으로 통신과금서비스가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제도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