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박진영 기자] 결합상품은 소비자 측면에서 요금할인 혜택, 사용 편의성 등의 장점이 있지만 위약금 등 큰 규모의 전환비용 부담이 발생하고 다른 통신 사업자로 전환이 어려워져 서비스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지난해 국책연구기관인 KISDI가 소비자가 결합상품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결합상품으로 인해 서비스 선택권이 저해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합상품 해지 시 발생하는 위약금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도 최근 3년 사이 급증한 것으로 밝혀졌다.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될 경우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시장 경쟁이 급격히 위축된다는 점이다. 서비스 해지 시 전환비용으로 인해 소비자가 특정 사업자에 장기간 약정으로 묶이면서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의 가입자 고착화가 심화되기 때문이다. KISDI도 결합상품으로 사업자간 경쟁이 약화될 우려가 있음을 지적했다.
▶지배적 사업자의 결합할인, 어떻게 볼 것인가
SK텔레콤은 ‘온가족무료’, ‘온가족프리’, ‘착한가족 할인’, ‘T가족 포인트’ 등 유무선 결합상품 출시에 주력해 왔으며, 올해 들어서는 무선 2회선 결합 시 초고속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는 신규 결합상품을 선보이며 가입자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결합상품 구성을 살펴보면 SK텔레콤의 인터넷 재판매 시 원가는 가입자당 재판매 대가 및 마케팅 비용을 고려할 때 1만6,000원 수준인데, 결합할인에 따른 판매가격은 1만3,000~1만4,000원 수준에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12년 SK텔레콤 초고속 사업 손익을 살펴보면 2,543억 원의 초고속 매출을 거둔 반면 재판매 대가로 2,042억 원을 지출했다. 마케팅 비용과 요금할인을 고려하면 초고속 사업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적자를 감수한 원가 이하 요금 정책에 대해 SK텔레콤은 IR 공시자료를 통해 “결합 할인 요금제는 강력한 자산인 가입자 기반을 활용해 당사의 경쟁력 차별화를 이끄는 핵심수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지금까지 망내외 음성 무제한 요금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기가 인터넷 할인 등 모바일 및 인터넷 요금 할인은 경쟁사가 주도해온데 반해 SK텔레콤은 망내 50%할인 요금제, 망내 무제한 요금제 등 자사 가입자 묶어두기 상품에 주력해 온 전례를 고려할 때 SK텔레콤의 근본 목적을 소비자 후생 증대 차원이라 해석하기 매우 어렵다.
SK텔레콤이 만약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빠른 속도로 결합시장에 지배력을 전이시킬 경우 기타 경쟁사업자는 견디지 못하고 단시간 안에 시장에서 도태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티브로드, 씨앤앰 등 주요 MSO들이 지난 2013년부터 대규모 적자로 전환했으며 일부 사업자는 초고속인터넷 사업부문의 누적적자가 점차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될 경우 소비자 측면에서도 사업자간 경쟁활성화에 의한 서비스 질 향상, 요금인하, 신규 혁신 서비스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됨은 자명한 사실이다.
독점 시장에서 소비자가 싼 값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았다는 유례는 전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공정위 시장조사 결과에서도 시장 집중도가 높은 시장일수록 기업의 총 이윤율은 높고 R&D비율은 낮아 이용자 후생이 저하된다고 조사된 바 있다.
한 경제 연구지에는 만약 이동통신시장의 고착화와 가입자 집중도가 해소돼 현재의 5:3:2 점유율 구도가 3:3:3으로 개선되면 약 11조 원의 소비자 후생이 증진될 것으로 학계는 전망하고 있다.
▶ 방통위-미래부-국책기관, “결합시장 지배력 전이 가능성 높아” 한 목소리
방송통신위원회는 SK텔레콤의 지배력 전이 여부 심사를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고시 개정을 추진하며, 유무선 결합시장 구조 개선에 본격 착수키로 했다.
방통위가 결합시장 구조 개선에 적극 나선 것은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지배력의 결합시장 전이가 가속화되고 있는데 반해 현행 고시에는 지배력 전이와 관련된 규정이 없어 개정을 통해 합리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추진하는 고시 개정안의 핵심은 ‘공정경쟁 저해효과 심사’ 조항의 신설인데, 이는 ▲시장점유율, 수익성 및 요금 등의 변화 추이와 전망 ▲결합상품을 구성하는 특정서비스에 대한 시장지배력 보유 여부 ▲경쟁사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선택권 제한 등을 고려하여 심사하게 된다.
심사 과정에서 SK텔레콤이 초고속 재판매를 통해 지배력을 전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경우 방통위는 재판매금지 또는 조직분리 등의 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
이에 앞서 방통위는 인터넷 재판매를 통한 SK텔레콤의 시장 지배력 남용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지난해 말 외부 전문가 및 방송/통신사업자 등 각계 전문가를 초빙해 ‘결합시장 공정경쟁TF’를 구성했다.
결합TF 구성 후 방통위는 모니터링 샘플수를 지난해 416개에서 올해 2,616개로 대폭 확대하는 등 수개월간 결합시장 실태와 문제점을 면밀히 조사해 왔으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결합상품 공정거래 여건 조성을 중점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래부도 결합상품 제도개선 연구반을 신설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한편 국책연구기관인 KISDI(키스디) 역시 최근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를 통해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지배력이 높은 상품과 다른 상품을 결합 판매하는 경우, 다른 시장으로 지배력이 전이될 수 있고 기존 지배력도 유지/강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외 사례 및 바람직한 정책 방향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일본의 경우 지배력 전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배적 사업자인 NTT 도코모에 대해 결합상품을 금지하고 있으며, EU를 비롯한 각국에서도 지배적 사업자의 결합상품에 대해 합리적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 일본은 전기통신사업법과 NTT법 산하 고시에서 지배적사업자인 NTT 동·서의 결합상품을 출시를 실질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결합을 통한 지배력 전이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NTT법에는 지배적 사업자가 새로운 경쟁분야에 진출 시 충분한 공정경쟁 보장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시장지배력이 남용되며,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NTT 동·서가 다른 시장지배적 사업자와의 제휴를 하는 경우, 그 시장 지배력이 결합함으로써 실질적 공평성 확보가 곤란해지는 등 경쟁 저해 요소가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 EU는 각 회원국의 통신규제기관이 지배적 사업자가 약탈적 요금설정으로 경쟁을 제한하거나 부당하게 결합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도록 소매 요금을 통제하는 조치 혹은 요금을 유사 시장에서의 원가/요금에 맞추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또한 일부 기관에서는 결합상품 출시 이전에 요금 구조 등을 분석할 수 있도록 사전에 신고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규제를 부과하고 있으며, 시장 분석과 연계하여 부당한 결합판매를 규제조치로서 금지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유선은 도이치 텔레콤이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돼 소매요금 통제, 가격압착에 의한 부당 결합판매 금지 등 규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아일랜드는 지배적 사업자인 Eircom이 결합상품 제공 시 도매요금을 규제하고 있다.
벨기에는 결합상품에 의한 이윤압착을 규제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가격 상한제 등 사전규제와 함께 결합서비스의 요금과 이용조건을 정부가 인가하고 있다.
한편 업계는 SK텔레콤의 지배력 전이에 따른 결합시장 독식 현상이 갈수록 심화됨에 따라 결합상품 심사를 골자로 한 이용약관 인가제가 통신시장의 비정상적 지배력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유지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공정거래법과 전기통신사업법에서는 특정시장에서의 지배적 사업자가 자금력, 인력, 유통망 등의 시장 지배력을 인접 시장으로 전이하거나 남용하는 행위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으며 발생하게 될 경우 엄중하게 제재토록 규정하고 있으나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정의’나 ‘지배력 전이 및 고착화’에 대한 판단기준은 모호한 상태다.
그 동안 이동통신시장 요금 이슈 등으로 인해 결합시장 지배력 전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후순위로 밀려왔으나, 최근 결합상품으로의 통신시장 경쟁 패러다임 변화로 인해 이제 결합시장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