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주관적인 리뷰이며 일부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지난해 국내외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은 영화 <끝까지 간다> 제작진이 다시 한 번 뭉쳤다는 소식에 관객들의 기대감이 모아졌다.
거기에 ‘믿고 보는 배우’ 손현주가 스크린을 꽉 채우는 원톱 주인공으로 분하며 놓칠 수 없는 명작의 탄생을 예고하는 듯 했던 영화 <악의 연대기>. 그 뚜껑을 개봉해봤다.
▶“내가 죽인 시체가 내 눈 앞에 다시 나타났다”
빗속에 한 아이가 울고 있다. 경찰에게 끌려가는 아빠를 보면서. 그렇게 짧은 컷이 지나간다.
유능하고 잘나가는 강력반 형사 최창식(손현주 분).
특진을 앞둔 최반장은 후배들의 축하를 받으며 회식을 마친 뒤 집으로 귀가하던 중 의문의 괴한에게 납치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최반장은 괴한과 실랑이를 벌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당황한 그는 당장 자신의 휴대전화로 112를 누르다 잠시 멈칫하고 만다. 곧 있을 승진에 지장이 생길까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 그 순간 친형처럼 따르는 서장으로부터 진급 심사에 앞서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언질까지 받게 된 그는 결국 결심을 굳혔다.
내적 갈등…. 잘못된 판단….

영화의 원활한 전개를 위해(?) 단순 정당방위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이때부터 꼬인다. 결국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몰래 시체를 은폐하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면서 진짜 ‘사건’이 벌어진다.
이튿날 아침, 일부러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듯 경찰서 앞 공사장 크레인에 매달린 채 시체가 나타났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터지자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고,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된 최반장은 수사가 진행될수록 초조해진다.
설상가상 최반장을 믿고 따르는 후배 형사 차동재(박서준 분)가 그에게서 뭔가 미심쩍은 점을 눈치 채기 시작한다.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증거를 조작하며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 즈음. 경찰서로 의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한 남자가 자신이 진범이라며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온다.
“제가 죽였습니다. 최반장님을 불러주세요”
▶흥미진진한 스토리…풀어내는 방식은 ‘아쉽다’
각종 영화 소개프로그램과 예고편을 보고 기대가 컸다. 기대감을 채워주듯 영화 초반까지는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한 형사의 앞에 느닷없이 위기가 펼쳐지고 알 수 없는 사건들이 휘몰아치며 ‘도대체 누가? 왜?’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범죄추리극. 그리고 나타난 미스테리한 ‘용의자’.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영화 장르가 ‘범죄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지만 ‘스릴’이 느껴지지 않는다. 극은 계속 늘어진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상황이나 연출로 보여줘야 할 부분까지 인물의 ‘대사’에 의지해 줄줄 읊을 때만큼 지루한 건 없다. 이 영화는 그런 전개방식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반전은 또 어떠한가.
반전을 위한 작위적인 장치가 너무 뻔히 눈에 보인다. 그렇게 내놓은 회심의 반전은 그다지 임팩트도 없고 개연성도 없다. 개연성이 부여되지 않은 반전의 남발은 관객들을 점점 지치게 만든다. 복선이나 암시적 장치가 부족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구성도 촘촘하지 못하다.
그나마 궁금했던 살인의 동기조차 납득되지 않으니 반전부터 결말까지 흐름이 꼬이는 느낌이다. 여기에 한국 영화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신파적 요소까지 첨가돼 식상함을 배가 시킨다. 차라리 살해 동기 없는 ‘싸이코패스’로 그려졌다면 더 설득력 있었을지도.
그래도 영화를 끝까지 놓지 않고 달리는 게 하는 힘은 배우들에게서 나왔다. 손현주, 박서준, 최다니엘, 마동석 등 각각의 몫을 제대로 해내는 배우들이 뭉쳐 영화를 완성했다. 배우들까지 힘이 달렸다면 올해 한국영화 중 네 번째로 2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좋은 흥행 성적표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슷한 스토리, 비슷한 제작진. 그렇다고 ‘끝까지 간다’ 같은 쫄깃함과 빅재미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 할 확률이 크다.
악의 연대기(The Chronicles of Evil). 범죄/스릴러. 감독 백운학.
15세 관람가. 2015년 5월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