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제품과 서비스는 A급임을 자부하지만 홍보·광고만큼은 B급 코드를 내세우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키치문화라고도 일컬어지는 B급 문화는 초창기에는 저예산, 비주류, 단순 상업적 목적으로 제작된 콘텐츠들을 지칭했다.
제작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현실적인 제약때문에 촌스러우면서 직설적인 표현, 황당하며 허술한 상황 설정 등이 콘텐츠에 사용되며 B급 정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최근에는 B급 문화를 이용한 콘텐츠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높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의도적으로 이 정서를 차용한 이른바 B급 광고 또는 키치(kitsch)광고가 늘어나고 있다.
비주류로 취급받던 B급 문화가 어느새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에게 A급 반응을 얻고 있다.
▶배달의민족 ‘B급 광고’ 선봉장
최근 광고는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로서 소비되고 있다. 잘 만든 광고는 소비자들이 유투브 등에서 직접 찾아 볼 정도로 그 인식과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진정으로 ‘광고를 즐기는’ 시대가 온 것이다.
광고를 즐기는 시대를 이끄는 주목받는 광고 중에는 B급 정서를 담은 코믹광고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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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앱 배달의민족 광고 속 배우 류승룡 |
그 중에서도 모바일 배달 애플리케이션(이하 ‘배달앱’) ‘배달의민족’의 B급 광고 열풍의 시발점이 됐다. 그들의 키치적이며 B급 냄새 물씬나는 광고들은 여느 대기업 광고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한 시도였다.
배달의민족은 ‘천만배우’ 류승룡을 모델로 영화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영상미를 갖춘 TV광고를 비롯해 밀레의 만종,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고구려 벽화 수렵도 등 고전 명화를 패러디한 광고까지 황당하고 재치 넘치는 콘텐츠를 쏟아냈다.
이 밖에도 배달의민족은 ‘경희야, 너는 먹을 때가 제일 이뻐’,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살찌는 것은 죄가 아니다’ 등의 B급 유머로 무장한 카피들로 무장한 옥외광고를 진행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은 광고 내용은 새털처럼 가볍고 한 없이 코믹하더라도 전체적인 작품성만큼은 ‘쓸데없는 고퀄리티’를 자랑해 그 괴리 자체가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배달의민족이 추구하는 B급 감성은 젊은 소비층의 취향을 제대로 건드리며 배달앱을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단순히 ‘웃기는 광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2년 연속 상을 휩쓸 만큼 인정받고 있다.
▶바통 터치 받은 숙박앱? 코믹감성도 그대로
배달의민족이 지핀 B급광고 트렌드는 숙박시설의 위치와 정보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숙박앱’) 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숙박앱 야놀자는 상반기 충무로 대표 씬스틸러 오달수를 모델로 기용해 한 편의 사극 영화 같은 광고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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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앱 야놀자 광고 속 배우 오달수 |
이 광고는 조선 최고의 놀이선생인 성현 '놀자'로 분한 오달수가 세상 모든 놀이의 교훈을 담아낸 비서 ‘놀어’의 가르침을 전하는 내용이다.
예컨대 ‘윗물이 놀아야 아랫물도 논다’, ‘놀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 ‘하늘이 무너져도 놀아날 구멍은 있다’ 같은 기발하면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명대사들을 남발해 웃음을 자아낸다.
이 광고는 티저(예고) 영상이 각종 온라인에서 오달수 주연 영화 예고편으로 잘못 알려지는 해프닝을 일으킬 정도로 코믹할지언정 퀄리티 만큼은 영화 스케일 못지 않게 높았다.
숙박앱 여기어때는 작가 겸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유병재와 롯데자이언츠 치어리더 박기량을 모델로 발탁해 숙박업종에 걸맞게 ‘19금’ 광고를 제작하더니 최근에는 대한민국 대표 19금 연예인 신동엽을 모델로 발탁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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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앱 여기어때 광고 방송인 신동엽 |
광고 내용은 중년남자의 분한 신동엽이 “모텔앱? 아이고 요새 애들은…”하고 혀를 끌끌 차자, “아저씨도 갔었잖아요” 외치는 젊은이의 목소리로 꾸며졌다. 이에 신동엽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2의 배달의민족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업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숙박앱들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재미를 잡기 위해 무모하게 선을 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류도 비주류를 택하다
스타트업들이 주로 사용하던 코믹광고는 과거와 달리 이제는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제작에 나섰다. 일단 온라인 상에서 화제성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올해 삼성카드 광고는 최고의 화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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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카드 광고 속 배우 유해진 |
이 광고에서 유해진은 어딘가 고독하면서도 묘하게 코믹한 표정으로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는 문구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수 많은 패러디와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다.
광고를 통해 유해진은 올해 열린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광고인이 뽑은 최고의 광고 모델상’을 받았다.
농심은 비빔면 출시와 함께 제국의 아이들 멤버 광희를 모델로 코믹광고를 선보였다.
광고에서 광희는 꼬불꼬불한 라면 면발모양 가발을 쓴 유머러스한 모습의 ‘비느님’으로 등장해 광희 특유의 깨방정 말투에 능청스러운 표정까지 더했다. 이 영상은 유튜브 공개 4일만에 조회수 70만을 돌파하는 등 온라인 상에서 크게 화제를 끌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대기업 광고에선 볼 수 없었던 과감하면서도 재미있는 B급 코드 광고가 젊은 소비층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며 “앞으로 이렇듯 호기심과 재미를 유발하기 위해 임팩트 있는 광고들이 더 많이 시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