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 위왕때의 일이다.
위왕이 즉위한지 9년이나 됐지만 주파호(周波胡)란 신하가 국정을 좌지우지해온 탓에 나라꼴이 말이 아니자 후궁 우희(虞姬가 "주파호를 내치고 북곽선생(北郭先生)같은 어진 선비를 등용하라"고 조언했다.
이를 안 주파호가 "우희와 북곽선생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모함, 우희는 결국 옥에 갇혔다.
위왕이 우희에게 죄를 묻자 우희는 "제게 죄가 있다면 참외밭에서 신발을 고쳐신지말라(瓜田不納履)는 말과 오얏나무 밑에서 관 끈을 고쳐쓰지 말라(李下不正冠)는 말을 어긴 것밖에 없다"고 답변, 거기서 깨달음을 얻은 위왕은 그길로 주파호 일당을 처형하고 나라를 바로잡아 나갔다.
여기서 '과전에 불납리하고 이하에 부정관하라'는 유명한 말이 나왔다.
이말은 전한의 학자 유향이 지은 열녀전(烈女傳)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참외밭에서 신발을 고쳐신으면 참외를 따는 것으로 오인받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치면 오얏을 따는걸로 오해받으니 남이 의심할 짓은 추호도 하지말라는 뜻이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꼼수를 부린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대기업들은 뭔가 그럴싸한 이유를 둘러대지만 속내는 법규에 따른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지 않기 위해 수리기록을 누락시키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는 내용이다.
공정위 고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의하면 자동차는 구입후 한달이 지난후 보증기간내에 주행및 안전에 관한 동일고장으로 3회수리후 4번째 고장이면 교환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은 성능기능상의 하자로 2회 수리후 3회째 고장 또는 여러부위 고장으로 4회 수리후 5번째 고장이면 교환등의 규정이 있다.
그럼 위 규정대로 수리 요건을 채우면 바로 교환가능한가. 아쉽게도 현실은 아닌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달여전인 지난8월 30일 성남에 사는 한 소비자가 제보해온 피해내용에 따르면 그는 아내와 함께 갤럭시S2 두대를 구입했다가 요즘 흔히들 쓰는 속어를 빌리자면 '대박 고생'을 하고 있다.
통화중 번호 입력시 화면이 사라지고 통화중 음성이 안나오다가 끊어지기도 하며 심지어는 화면 먹통현상까지 다반사로 일어나 서비스센터를 찾아 수차례 AS를 받았지만 상황은 개선되지않고 오히려 심해졌다.
수리가 불가능해지자 기사들은 "괜찮으니 그냥 쓰라"고 했고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려니 그동안 수리 기록이 없어 교환은 불가능하다고 했다는 것.
이 소비자는 "제품의 원가를 수배나 비싸게 받으면서도 소비자의 권리는 무시하고 수리이력 까지 교묘히 누락시키면서 시간 끌기로 보증기간을 넘겨 유상 폭탄을 소비자에게 독박 씌우려는 대기업에 행태가 개탄스럽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일주일여전인 지난달 24일 본지에 제보된 내용도 위와 다를바 없다. 안산시에 사는 한 주부는 LG전자 옵티머스 뷰를 샀지만 산지 수시간만에 화면이 멈추고 키패드가 입력이 되지 않는 불량이 발생하자 AS센터를 방문해 부품을 교체했다.
그러나 며칠후 똑같은 증세가 일어나서 AS센터를 찾았지만 부품교체를 해주지않고 어플 충돌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는데 결국 LG는 수리자체를 해주지 않음으로써 동일 증세 2회째 수리를 피해간 셈으로 다음에 똑같은 증세로 찾더라도 교환을 해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안양에 사는 한 주부는 더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삼성전자 고가 TV를 산후 동일 고장으로 수회 AS를 받았고 보증기간이 지난후 역시 AS를 신청했는데 삼성전자측의 답변은 전산상 수리기록은 한번밖에 없어서 무상 AS나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삼성전자측이 내놓은 수리기록 누락 답변 사유는 황당하다 못해 실소를 금치못하게 했다는게 소비자 얘기다.
삼성전자는 "개인신용정보동의법 때문에 A/S접수해서 수리 받았더라도 그 내용을 저장 할수가 없어 삭제 하므로 고객은 동일한 제품을 몇번 수리 받아도 그것이 제품의 결함이 있었다고 증명할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 얘기했다는 것.
소비자가 "기사 방문기록은 있을것 아니냐 그거라도 알려달라"고 하니 삼성전자측은 그 기록조차 없다고 발뺌한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소비자는 고장나 발을 동동구르는데도 대기업들은 "그냥 괜찮다" "어플 충돌" "개인정보 보호"등의 이유를내세워 수리기록을 애써 누락시키려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과전에 불납리하고 이하에 부정관하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물론 대다수 AS센터는 고장난 증세명을 교묘히 바꿔적거나 수리기록을 안남기거나 또는 수리 자체를 거부하는 등의 꼼수를 부리진않을 것이다. 일부의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일지라도 이런 식의 대응은 곤란하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것을 잃는다는 뜻의 '소탐대실'이란 말이 있다. 대기업들의 행태가 딱 이꼴이다.
기업은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줘야 유지되고 커나간다. 기업이 신뢰를 잃으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어느 한 순간이다.
한번 떨어진 이미지는 걷잡을수 없이 추락하게 돼 회복불능이 되고 만다.
고사성어 하나만 더 인용하겠다. 당랑거철(螳螂拒轍 : 출전 '장자')이란 말이 있는데 사마귀가 앞발을 들어 수레바퀴에 저항한다는 말이다.
대기업들은 소비자란 거대 수레에 저항하지 말길 바란다. 최근의 소비자는 똑똑해졌고 뭉칠줄도 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법(위징 : 출전 '정관정요')이며 큰 강물의 기원은 작은 술잔의 물(공자 : 출전 '자도')이다. <김자영 기자 / 소비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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