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이 있다.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말로 겉은 그럴싸하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속이 없는 경우를 비유할 때 자주 인용된다.
소비자 관련 법률에도 양두구육과 같은 법률이 있으니 바로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이다.
통상적으로 법률에 규정돼있는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게 되면 여러 가지 제재조치가 가해지는 것은 물론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할부거래업자가 법을 위반하면 형벌은 고사하고 공정위는 그 흔한 시정권고 조차 내릴수 없다. 한마디로 관련법에 제재규정이 증발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관련 법률중에는 고가의 물건을 소비자가 경솔하게 샀을 경우 짧게나마 철회기간을 둠으로써 충동구매에 따른 피해를 막고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들이 있다.
예컨대 방문판매업자의 달콤한 말에 고가 물건을 사거나 만만치 않은 가격의 물건을 할부라는 이유로 쉽게 사버리거나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고보니 사진과는 다른 경우 소비자는 땅을 치고 후회할 수밖에 없다.
당국과 국회는 이같은 소비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일정 기간내에 청약철회가 가능하다는 법률들을 만들었다.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할부거래법)과 방문판매에 관한 법률(이하 방문판매법) 및 전자상거래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 등이 바로 그러하다.
이들 법률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7~14일 내에 우체국에서 내용증명을 보내는 방식으로 청약철회가 가능하며 음악CD등 복제가능한 제품이나 원천적으로 청약철회가 제한되는 자동차 비행기 선박 기차 보일러 등 외엔 포장을 뜯어도 권리행사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또 3영업일이내에 환불조치등을 취하지 않으면 연 20%의 지연이자를 물어야 하고 이같은 규정들을 어기면 원칙적으로 요건에 따라 공정위는 시정권고 시정조치 영업정지 처분등을 내릴수 있으며 이들 조치를 어기면 징역 벌금형등도 가능하다.
이같은 법률규정들이 제대로 된 법적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을때 이행을 강제하는 수단이 있어야 함은 자명하다. 강제성 없는 법률은 사실상 도덕률과 뭐가 다르며 철지나 장롱속에 들어간 가을 부채(추선 : 秋扇) 신세와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제재조치 없는 법률조항이란 법위반자들 입장에선 마치 전쟁터에서 자신의 적이 총칼없이 나오는 군인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직접할부거래 및 간접할부거래를 합쳐 할부거래라고 하는데 유일하게 할부거래만 제재조항이 없는 것.
할부거래와 선불식 할부거래(예컨대 상조)는 할부거래법에 의해 상세히 규정돼있으며 제재조치를 제외한 조항에선 ‘할부거래 및 선불식할부거래업자’는...등의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제재조항에 들어가면 할부거래업자란 단어는 갑자기 쏙 빠지고 ‘선불식할부거래업자’에 의한 위반의 경우에만 여러 법적조치가 가능하도록 돼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문판매법과 전자상거래법에 의해 청약철회를 할 경우에는 서면 뿐만 아니라 입증 가능한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청약철회가 가능하지만 할부거래법에 의한 청약철회는 오로지 서면으로 하는 청약철회만 인정된다.
따라서 소비자가 택배로 물건을 반송함으로써 청약철회를 했다면 원칙적으로 철회효과가 인정되지만 할부거래업자에 대해서만 그 효과는 인정되지 않는다.
할부거래 청약철회는 업체가 법을 어겨도 처벌조항이 없는것도 문제지만 할부거래 철회를 정말 까다롭게 만들었다.
왜일까? 할부거래의 대표적인 품목인 휴대폰이나 신용카드에서 볼수 있듯이 할부거래 상대방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인 경우가 무척 많은데 혹시 이들의 로비로 법적 조치가 빠지게 되고 청약철회도 어렵게 된걸까?
이 법을 만든 당국자들은 할부거래법을 만들때 대기업편에 서지 않고 소비자를 위한다는 생각만으로 사심없이 만들었을까.
촉나라 '제갈공명'도 군령을 어긴 심복'마속'을 일벌백계 차원에서 참형 명령을 내렸지만 뒤돌아선 눈물을 흘렸으며(여기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유명한 말이 나왔다) 진나라 황제가 '기황양'에게 남양 현령 적임자를 물었을때 기황양은 자신의 철천지 원수인 '해호'를 추천했고 주나라 '석작'은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아들을 속여 진나라로 보냄과 동시에 진나라에 밀서를 보내 아들을 처형해달라고 함으로써 역모 사태를 진정시켰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공명정대한 사람들의 얘기이다. 만의 하나 당국자들이 사심없이 처리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눈가리고 아웅식의 법규를 소비자들이 바로 잡아야 할때다.
최소한 힘없는(?) 업체들을 상대로 하는 여러 거래는 각종 제재규정을 두면서 대기업 거래가 많은 할부거래에 대해서만 아무런 처벌조항을 안두고 철회도 까다롭게 한 것은 아무리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우긴다 해도 오해를 벗을 길이 없다고 하겠다.
소비자 주권 회복을 위한 소비자들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을 촉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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