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위 고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는 소비자들이 규정을 모르면 넋 놓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내용들이 간혹 있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내용중 자동차와 관련한 것도 대표적인 예다.
예컨대 주행 및 안전도 등과 관련한 중대한 결함이 발생해 동일하자에 대해 3회까지 수리했지만 하자가 4회째 재발하면 교환이나 환불을 요청할 수 있는데, 문제는 여기에 "수리는 제조자, 판매자 또는 그의 대리인, 즉 직영 또는 지정정비업소에 의해 수리한 경우로 한정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는 것.
이 규정 탓에 만일 소비자가 직영 서비스센터가 아닌 사설 정비업체에 수리를 여러 번 맡긴 경우엔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실제로 본지에 제보된 내용 중 폭스바겐 차량에서 방전이 여러 번 일어나 서비스를 받았지만 "직영 정비소에 수리받은 내역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환·환불을 거부당한 경우가 있었다. 소비자가 차량수리를 위해 들였던 엄청난 시간과 돈,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모두 직영 정비소만 찾아 차량을 수리해야 하는가?
제조사 입장에서는 물론 사설업체의 정비기록을 신뢰하기 힘들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사설 정비소 기록까지 들고 교환이나 반품을 요청하기 시작한다면, 수리기록을 조작하는 '블랙컨슈머'들도 등장해 업체측이 피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있는 자동차 정비업체는 모두 3만 5천여 개인데, 이 가운데 대부분이 사설 정비업체다.
차에 사고가 나 급한 마당에 직영 서비스센터만 찾고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이런 기준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다는 점. 문제가 발생한 뒤 소비자가 업체측에 항의하면, 그제서야 이들은 규정을 들이밀며 피해구제를 거부한다.
이 외에도 분쟁해결기준의 다른 항목에는 '자동차의 중대한 결함과 관련된 수리기간이 한 달을 초과할 경우' 차령에 따라 제품교환이나 수리비용 포함한 구입가 환급 또는 부품교환 등을 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이 때 소비자가 '서면으로' 수리신청을 한 경우에만 누계일수에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수리를 맡기면서 '수리신청서' 따위를 작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기준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집' 다음으로 비싼 재산이 '자동차'인데도 정부당국이나 업체측은 자동차소비자 문제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소비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자동차 분쟁해결기준 때문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두 번씩 울고 있다.